제      목: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
이      름: 최진사
작성일자: 2018년 07월 30일 오전 05시 38분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


▲ 리처드 닉슨(1913~1994)


당시 세계는 아직도 냉전 시대였다. 오랜 전쟁으로 인해서 미국인들이 불만이 많았다.

“왜 우리가 미국도 아닌 다른나라의 전쟁까지 감수해야 하느냐?”

미국은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을 겪으면서 지칠 대로 지쳐있던 것이다.


닉슨 대통령은 1969년 7월 아시아 국가들을 순방하는 도중에 괌에서 이른바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그 내용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1.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2. 강대국의 핵에 의한 위협을 제외하고는 내란이나 침략에 대하여 아시아 각국이 스스로 협력 대처할 것.
3. 태평양 국가로서 중요한 역할은 하지만, 과잉개입은 하지 않는다.
4. 원조방식을 강화하여 미국의 과중한 부담을 피한다.




한국은 미국 공화당 닉슨 대통령의 새로운 외교정책에 크게 당황했다.

베트남 전쟁과 같은 국지 전쟁에 개입하지 않고, 아시아 국가의 내전이나 침략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의 닉슨 독트린 선언은 한국에 엄청난 쇼크였다.

닉슨 독트린으로 동두천 캠프 케이시에 주둔했던 주한미군 7사단 2만여명이 일방적으로 철수되었다.
심각할 정도로 병력이 감축되고 한국에서 손을 때겠다는 입장까지 갔으나, 그러나 ‘주한 미군’의 완전철수는 일어나지 않았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이 사임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나라의 존망이 걸린 위기에 자주안보체제 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1971년 12월 27일,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핵탄두 탑재용 탄도 미사일 개발을 지시했다.
미국이 서독에 16발을 배치한 MGM-31A 퍼싱 I 핵미사일을 모방해서 1976년까지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1978년 9월 16일, 속리산에 진도 5.2의 지진이 발생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 진도였다.
진도 5는 보통 핵 실험할 때 나타나는 진도였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친구인 김재규 중앙정보부(KCIA) 국장한테 암살되었다. 김재규는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죽였다고 주장했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기무사령관이 12·12 군사반란으로 집권했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이를 묵인하고, 핵무기 개발을 안한다는 조건으로 카터 대통령도 전두환 집권에 동의했다.




2016년 11월, 미국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가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닉슨과 개인적으로 친한 트럼프는, 닉슨 독트린과 거의 비슷한 외교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 주한미군, 북핵문제에 대해 닉슨 때 처럼 이상한 외교정책이 나오지 않을지를 매우 우려하고 있다.

[편집:최진사]




최진사: 미국이 자유월남에서 철수할때 "월맹이 침략하면 언제든지 다시 파병한다"고 했지만, 1975년 1월 월맹의 침공에 미국은 파병하지 않았다. 닉슨 독트린에 의거,"스스로를 지키려고 힘쓰지도 않는 국가는 도와줄 가치도 없다"하였던 것이다. -[07/30-05:15]-
최진사: 바로 그시절에 프레이저 보고서 사건이 일어났다. 그 내용은 '월남전과 한국' 토론실 1104번 '프레이저 보고서'에 올려져 있다. 참고하세요. -[07/30-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