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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최진사
Subject   최초의 디지탈카메라 Sony 마비카

최진사가 처음으로 디지탈 카메라를 만났을때...
요즈음은 스마트폰으로도 사진을 찍지만 불과 20년전엔 꿈같은 이야기?


최진사는 필름  카메라를 중학교때부터 만졌으니 반세기가 넘었다.
그게 천생연분 취미였나보다.

1999년에 일본 Sony 회사에서 필름이 없는 희안한 카메라를 출시한다고 떠들었다.
그게 바로 MVC-FD7 마비카 카메라였다.



최진사는 베트벳 홈페이지를 위하여 거금을 투자하여 손에 넣었다.

그 전까지는 필름을 넣는 카메라였는데 필름을 넣지 않아도 찍는 카메라가 등장했다.
사진을 보관하는 장치는 카메라 내부에 3.5인치 플로피 디스크가 들어가는 것이었다.
당시 일반적인 가정용 컴퓨터는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가 달려 있었고,
그보다 작은 3.5인치 플로피 디스크가 등장할 때였다.

여러분은 혹시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기억하시나요?
불과 18년전 이야기지만 SD메모리가 개발되기전 이야기라서 이해 할랑가 몰라.
사진찍을 때 코닥필름 사고 현상하고 인화하고...그런 절차없이
들고 다니면서 퍽퍽 찍어도 돈이 안들어가니 세상에 이럴 수도 있나 싶었다.



2000년 베트벳 홈페이지 등장과 함께 중학생이었던 윤수록君이 등장하여
베트벳을 갈구던(?) 한겨레 좌파들에 대항하여 파월장병을 대신하여 싸우던 시절이었다.
그 윤수록君이 월남전 사령관 채명신 장군님을 뵙는 것이 소원이라고 해서
2001년 1월 후암동 관사에 살고계시던 채명신 사령관님을 방문했을 때도 마비카를 들고 갔다.
그 윤수록君도 군대생활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텐데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

그 당시는 베트벳 전우들이 똘똘뭉쳐 한겨레와 싸우면서 갈구던 좌파들을 물리쳤는데
지금은 그때 구수정이가 또 좌파 시민연대와 붙어
또 파월용사를 매도하는 짓거리를 하고다녀도 별 반응이 없어 참 재미가 없는 세상이다.

이제 며칠후면 베트벳 개설한지 18주년이 지나고 가을모임을 갖는다.
그동안 적은 내부에서 나타나고 측근이 배신을 한다는 진리를 터득했다.
그중에도 의리를 중시하는 분들이 계셔서 베트벳이 존재해 왔다.
내 죽으면 그 모두가 부질없다는 걸 알았고, 내 죽어도 더 오래 남이있도록 연장해놨다.

그중에 보람된 일이라고 기억되는 것은
데모 며칠간 한 사람들이 518 국가유공자가 되고 일시불로 몇억씩 지급될때
파월장병들이 보훈처 앞에서 부당하다고 집회를 하던 사진과 동영상을 마비카 카메라로 찍어서
여의도 어느 사무실 컴퓨터를 빌려 현지에서 인터넷 생중계로 시위 소식을 전우들에게 알렸다.

베트벳 홈페이지가 잊혀질뻔한 월남전을 재조명 해놓은 역사적 일을 했다고 자부한다.
얼마후 SD메모리가 장착된 소형 케논 IXY 디카를 구입하고, 마비카 카메라는 찬밥신세가 되었다.
덩치 큰 마비카 디지탈카메라는 케비넷 속에서 녹이 쓴다. 이제 박물관에서나 볼 물건이 되어 버렸다.

지금 최진사는 크기는 작은데 DSLR처럼 화질이 좋은 소니 RX100m 디카를 들고 다닌다.

(월남전과 한국 web master / 최진사)



 


최진사: 그때는 필름 안 들어가고 즉석에서 찍은 화면을 볼 수 있다는게 마법같은 이야기 였습니다. 베트벳 홈페이지 개설할때 필요할것 같아 그때 최초의 디지탈 카메라를 비싼 돈을 주고 손에 넣었으니 최진사가 엄청 빠져(?) 있었나 봅니다. 하여튼 디지탈 카메라는 내가 처음 사용했다고 자부합니다. -[10/14-08:29]-
최진사: 저때 채명신 사령관님은 후암동 관사에서 살고계실때 였는데 저때 전우들은 모두 건강하고 팔팔할때 였다. 마비카 카메라는 맨처음 개발한 디지탈 카메라 였는데 SD 메모리카드가 개발이 안되어 플로피디스크로 저장했기때문에 사진1장 데이타 용량이 크지않아 그래서 화질이 거칠고 열악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는 디지탈카메라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10/14-08:35]-
최진사: 1999년말부터 2000년 이후까지 한겨레21에는 월남전 양민학살 기사가 그대로 남아있다. 518을 국가유공자로 만들면서 월남전 파월의 업적을 폄하시키려고 구수정이를 앞장세워 한겨레는 악의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최진사가 그 기사를 옮기는 언론사에 항의를 했으나 언론사끼리는 팔이 안으로 굽는 그런 답변을 들었다. 읿부 호남 파월전우들이 한겨레 편을 들어 베트남현지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는 추태까지 보였다. 2000년 그 당시는 월남참전 단체가 한마음이 되어 보훈처 앞에서 항의 데모도 하고 그랬는데, 오늘날 좌파세상이 되면서 조직이 많이 망가지고 있어서 안타깝다. 그때부터 베트벳 홈페이지는 많은 월남전 기록을 남겨 놓았는데 보람을 느낍니다. -[10/14-09:33]-
김복만:

참전 단체장이 최진현전우님 같은
참 전우애심이 조금만 있었다면 지금의
참전단체는 국민의 존경을 받고 쓰레기같은
언론과 인간쓰레기 걸레 같은 엉터리기자들이
함부로 할수 없었다고 생각 하지만 지난날의
책임은 우리 참전 전우들에게도 일부는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 합니다.

제가 10월 8일 부터 10월 12일까지 하노이
하롱파크,엔트, 하롱베이, 하노이시내 전동투어
하면서 보고 느낀것은 2007. 2009.전적지 순례때와
지금은 많이 발전하여 몇십층 고층빌딩, APT 숲과 활기
넘치는 도시 머지않아 대한민국을 따라오는 아시아
룡으로 부상할것 입니다.

사회주의 나라지만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사진담으로
여행 갔지만 전적지 순례때 보다 좋았습니다.
기회가 되면 중부지역 다낭 .호이안, 후에 사진 담으로
가고 싶군요. 하루에 한번은 꼭 이홈피 오면 포근함을
느끼곤 하지요. 최진현전우님께 감사와 함께 건강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10/14-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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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10.14 -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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