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토요일
친구녀석들이 조금 지나면 슬슬 사립문을 밀고 들어설 것이다.
마침 늦가을 하늘이 오후의 그 온화한 햇살로 따사롭고 은혜롭다. 반세기를 잘 견뎌온 목련과 감 나무의 아래는 온통 큰 갈잎의 낙엽이 갈之자 지천이다. 노란 빠알간 잎들은 오늘 따라 홍단풍속에 더 눈부시다. 고추잠자리 한마리가 작은 연못 벽돌위에 애잔하다. 만추야---. 곧 마지막 잎새만 삭풍에 달랑거리겠지. 내일이 입동이라니 말야---.
'근데 이 친구들이 오늘따라 왜이리 궁뱅이야!'
오늘 와봄에 둘러앉아 술한잔 하기로 한 중학교동기녀석들이 올 시간이 지났는데 상기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늘 같은 날 잔디밭 한 켠에 드럼통 반잘라 만든 엉성한 바베큐 통도 장작불에 잘 어울것이다. 미리온 친구병극이랑 여기 저기 와봄에 떨어져 있는 낙엽과 나무동가릴 주워다 놓고 무쇠솥두껑을 반짝거리게 만들어 놓은지가 벌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읍내를 지났다니 곧 들어설걸 고새를 못기다려 눈은 자꾸 구둔역 철길 밑으로 간다. 하마 이제야 저제야 올까 기다림에 목빠진다.
세상에 제일 즐겁고도 견디기 힘든일 중의 하나는 아마도 정다운 친구 기다리는 것일게다. 애시당초 딱 부러지게 약속시간을 정하지 않은 게 영 잘못이었다. 그냥 처음 약속시간을 정할때 1시면 1시 아니면 한시반에라고 했으면 될걸 막연하게 '토요일 오후에 보지 뭐' 그랬던 것이다. 그래놓곤 안달이다. '연신 지금 어디있는데?'라고 전화를 해대는 것이다.
" 야, 임마야! 이왕이면 빨빨리 움직이지 않고 뭐하노?"
이동술의 대답이 걸작이다.
"차안에서 막 뛰어가고 있다"고 그런다. 김천수는 팔당대교를 마악 건넜고 도이술은 남한강을 좌우지간 끼고 흘러가고 있단다.
"아침 점심도 걸렀는데 회가 동해 죽겄다!" "아이고 우짜겠노? 그러몬 너거끼리 먼저 묵어라!"
"그건 그렇고 뭐 사가지고 갈거 없나? " "소주하고 상추 삼겹살 다 사왔다. 그냥 시절 피우지말고 빨랑 오이라!"
서편 하늘을 본다. 해지기 전엔 다 올거다. 그러나 가을 햇살은 짧다. 쉬이 저산너머로 해지면 금새 산그림자 내리고 서늘하다 못해 찬기운이 돈다. 햇살이 아직은 넉넉할 적에 다들와서 반짝이는 목련의 낙엽도 머리위로 날려보며 현란한 홍단풍숲 그 낙엽을 밟게 하고 싶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이 와봄 가을의 풍경을 함께 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소주잔 부디치고 기우리며 세상사 이야기하다 봄여름 내내 내가 얼마나 땀흘려 열심히 농사를 짓고 이 가을에 무얼 얼마나 수확했는지를 무슨 무용담처럼 들려주고 싶어 은근히 안달이 난 것이다.
"진짜로 늦네! 왜 이리 더디노? 내 전화한번 해보까? "
요번엔 미리 함께 온 병극이가 슬며시 핸드폰을 꺼내든다. 염화미소로구나!
"아침도 안먹었는데--. "
그러더니 그냥 전화를 한다.
" 어디고? 뭐라고? 읍사무소를 지난다고? 알았다. 마 그길로 곧장 큰 길로 오면 된다. 여주로 빠지지말고. 좀 오면 구둔역 이정표가 보일끼다. 불 피워놓을께."
드디어 성냥을 그어댄다. 나무 잔가지가 타고 정겹게 연기가 오른다. 토막나무를 주섬주섬 넣는 손길이 바베큐통에 잘 어울린다. 주위가 따뜻해져 온다. 슬적 던지는 눈길에 막 철길아래 돌아나오는 차가 들어온다. '아이고 인자서야 오네!' 비로서 병극이의 눈가가 환해진다. 아직도 햇님은 서산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야외용 탁자에 놓인 술병이 10병인데도 작고 훨 모자라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