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중국 산동성 제남시 출생. 본명 배만금(裵萬金),
아명(兒名) 배신웅(裵信雄), 예명 배호(裵湖).


이 분은 '돌아가는 삼각지'나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가 울어', '안개 속으로 가 버린 사랑', '당신' 등 숱한 히트곡을 비롯한 260여 곡을 불과 5년의 활동 기간에 점점 꺼져가는 생명줄을 붙잡으며 혼을 불태웠던 가수였습니다. 그 짧은 기간에 남긴 흔적이 너무도 강렬해서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구요.

독립운동을 했던 부친을 1955년에 여의고, 15살이던 이듬 해에 상경해서 넷째 외삼촌 밑에서 드럼을 배우다가 배호로 개명해서 밴드 활동을 시작한 건 23살이던 1964년이었습니다.

이미 이 때부터 드럼을 잘 치는 미남주자로서 금테 혹은 뿔테 안경과 중절모가 트레이드 마크로 알려져 있었는데요. 1965년에 '두메산골'을 비롯해서 6곡을 녹음해서 음반을 냈지만 '두메산골'에 담긴 우수(憂愁)의 정서가 너무 짙다는 이유로 PD들은 배호씨를 철저히 외면했다고 합니다.

비록 첫 음반은 실패했지만, 밴드를 조직해서 밤무대에서 열심히 활동했던 배호씨는 1966년 2월, 공연을 마치고 친구들과 돼지불고기를 먹었는데 식중독을 일으켰고, 설상가상으로 식중독 균이 신장에 침투해서 급성 신장염을 앓게 됩니다.

지금은 큰 병원마다 신장내과가 있지만 1966년 당시에 한국엔 신장투석을 할 수 있는 복막투석관류액조차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25살의 청년에게 신장염은 너무나 가혹한 병마였지요.

청량리 부근의 단칸방에서 어머니, 누이와 함께 살면서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서도 '황금의 눈'을 발표하고 같은 제목의 영화에도 출연했으며 '누가 울어'와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랑'을 발표했지만 이 두 곡은 레코드사의 부도로 제대로 빛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두메산골' '황금의 눈',  '누가 울어'가 가끔 방송을 타긴 했으나 안타깝게도 이미 이 때 무대에 혼자 서기가 어려울 정도로 병세가 악화 되어 있었고, 더 나빴던 것은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상황에서, 퉁퉁 부은 몸을 끌고, 계속해서 업소 출연을 해야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병원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던 그에게 무리한 연주활동은 병세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갔고 한약 등 약에 의지하며 하루하루 버텨가던 어느날, 그는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지게 되고 이미 악화 될 대로 악화된 상태에서 연주활동을 중단하게 됩니다. 이후 두 달간 일체의 음악활동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지요.

이렇게 어려운 시기의 배호씨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1967년 작곡가 배상태씨를 만나서부터였습니다. '돌아가는 삼각지'를 작곡하고 가수를 물색했지만 남진씨, 남일해씨, 금호동씨 등 유명가수에게는 모두 거절당하고 우연히 배호씨의 '두메산골'과 '누가 울어'를 들은 후에 바로 배호씨를 찾아왔지만, 도저히 아파서 노래를 부를 수 없다고 했지요. 간신히 가사를 보여주고 승낙을 얻은 후에 병실에서 딱 한 번 노래를 부르고 녹음을 끝냅니다.





♪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 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하며
비에 젖어 한숨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

삼각지 로타리를 헤매 도는 이 발길
떠나버린 그 사랑을 그리워하며
눈물젖어 불러보는 외로운 사나이가
남몰래 찾아왔다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를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삼각지 로'에서 호흡이 끊기는 것을 비롯하여 노래 곳곳에서 숨이 차서 끊어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가쁜 숨을 내쉬며 힘들게 녹음을 한 '돌아가는 삼각지'는 발표한 직후 4개월 동안에는 남진씨의 '울려고 내가왔나'의 위세에 가려져 있었지만 기존의 대중가요에서 전혀 느낄 수 없었던 배호씨의 개성적이며 선이 굵은 저음과 담백하면서도 애절한 호소력은, 6월이 되면서 대구지역에서 가장 먼저 폭발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이후 부산, 광주 등 지방 대도시를 시발로 한 이른바 '배호 태풍'은 삽시간에 서울로 상륙한 뒤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폭발력을 내보이며 그 해 KBS 라디오 가요프로인 "전국가요 릴레이"에서 단일곡으로 20주 연속 1위를 차지하기에 이릅니다.

병상에서 성공소식을 들은 배호씨는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등을 뒤이어 발표하고 드디어 정상적인 치료를 받게 되지만, 이 때 의사들은 이미 그의 수명이 길어야 3~4년 정도 남았다는 진단을 내리지요. 배호씨가 20여 곡의 대히트곡을 비롯한 260여곡을 발표한 건 불과 5년 사이인데 그나마 조금이라도 건강했던 시기는 1년 반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방송이 활성화되지 못했던 그 시절, 배호씨는 주로 전국을 순회하며 라이브 공연을 했는데요. 그의 남성적인 저음과 끈끈한 창법에서 품어내는 매력, 수려한 외모와 세련된 무대매너가 뿜어내는 카리스마는 늘 청중을 압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몸이 좋지 않아 대부분은 앉아서 노래를 불러야 했고 한 번은 그가 도저히 노래를 부르지 못할 정도로 아파서 사회자들이 청중에게 양해를 구하자 곧 야유와 동시에 물건들이 무대로 날아들었고 결국 배호씨는 사회자에게 업혀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지요. 심지어는 무대에서 각혈을 하며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청중들과 지인들이 기억하는 배호씨는 마이크를 잡는 그 순간만큼은 단 한 번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던 프로였다고 합니다.

1968년엔 최고의 음반판매량을 이루고, 각종 가수상을 휩쓰는 등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며 매니저이자 당대 최고의 작사가였던 전우씨의 말에 의하면 돈다발을 베개삼아 잘 정도로 큰 부를 이루었지만, 그 돈은 모두 병원비로 나갔고 치료를 받기 위해 아픈 몸으로 다시 무대에 서야 하는 악순환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점점 병세가 악화되던 배호씨는 1971년 10월 20일 이종환씨가 진행하던 MBC '별이 빛나는 밤에' 출연 후 귀가 하다 비를 맞은 것이 원인이 되어 다시 입원을 하게 되고, 신장 이식수술의 초기 단계였던 당시 그의 주치의는 신장수술을 시도하나 이미 그의 신장은 망가질대로 망가진 최악의 상태였고 아무런 손을 쓰지 못한 채 그대로 봉합되었지요.

그리고 다음 달인 11월 7일에 만 29세의 나이로 숨을 거둡니다.

노래에 恨과 눈물의 정서를 녹여 부를 줄 알았던 가수였고, 실제로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저음을 흉내내는 사람은 많지만 죽음의 병마를 안고서도 무대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에 배호씨는 돌아가신 지 35년이 되는 지금도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비록 시간이 조금 더 흐른다면, 배호씨를 직접 본 사람들도 이 세상을 떠날 것이고 어쩌면 50~60대가 주축인 배호씨의 팬클럽(www.baeho.com)도 사라질 지 모르는 일이지만 그가 노래로 말하던 우수(憂愁)어린 삶에 대한 편린은 잊혀지지 않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