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9-20 토일요일
6월이 되면 뻐꾸기울음 잦아지다 한차례 비바람이 오다 7월지나 8월이 되면 고추잠자리가 잔디밭위에 빨갛게 뜨고 드디어 매미가 탈각하여 우는 양평 지제의 구둔역 마을. 어느 듯 가을 기운이 스며든다.
와봄의 몇 안달린 돌배가 익으려면 여름이 더 한창이어야 하는데 이때가 되면 그만 가을기운 서리고 서리 발등에 내리며 김장용 배추모종이 길가 모퉁이나 양평장 할머니좌판에 널리기 시작해버리는 것이다.
몇년전부터 난 모종을 양평장 구석에 좌판을 손바닥만하게 벌리고 앉으신 수건 쓴 한 할머니로 부터 사고 있다. 혹 오늘이 아니면 다음번을 기다리며 햇빛에 그을려 갈라진 그 모습을 뵙고야 모종을 사는 것이다. 왠지 모를 풍상을 다 겪었을 그 할머니의 손등을 어르만지며 모종 몇개라도 팔아드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실 매년 느끼는 심사지만 배추모종이 그다지 반갑질 않다. 그러나 절기는 어쩔수없고 촌부흉내는 내고 싶으니 남하는데로 한 2판정도를 올해도 산다.
마침 가을(?) 바람시원하고 구름이 하늘을 가려 감자밭 뒤엎고 옥수수대 걷어내는데 그리 힘들이지 않아도 좋다. 풀 몇짐을 걷어내고 장마나 잡초 핑게대며 게을리 건너뛰었던 잡초더미 감자밭에서 채 추수하지 못한 감자알를 덤으로 반바구니 정도 걷어들이며 몇이랑 안돼지만 황토흙이 좋은 와봄이랑에 배추를 한 100포기 정도 심었다. 그러나 잡초를 쳐내며 대엿평정도 밭이랑을 꾸미기란 그리 쉬월치않으니 새벽에 붙어 오후 3시나 되어야 밭머리에 앉게 된다.
다 심고 나니 제법 배추밭같다. 좀전의 잡초더미가 순식간에 근사한 배추밭으로 변한 것이다.
밭머리에 덜푸덕 주저앉아 차거운 매실차한잔에 더위 덜어내고 나서야 올해도 밭여기저기에 한창인 해바라기꽃이 눈에 들어온다. 해바라기씨가 촘촘히 익어가고 있었다. 배추가 제법 통이 차올르라치면 해바라긴 그 분내음 나는 아름다움은 다 바람으로 날려보내고 빈 대로 남아 늦가을 찬 바람에 서걱대며 서있겠지. 자연의 균형미가 제일 잘 갖추어진 해바라기 씨앗의 균형미의 극치 1:1.618의 신의 황금분활조화가 묻어있다는 해바라기 씨앗. 지척에 마주보면서 배추는 이제 한해를 시작하는데 해바라긴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다 밭머리에서 해바라기에서 눈을 돌려 와봄의 여기 저기를 둘러본다. 어느듯 들풀은 조금씩 생기를 덜어내고 코스모스와 금계국의 황색꽃이 피어있는게 눈에 띈다. 대추랑 감이 눈에 보이고 고추가 빠알게지고 있다. 방금 심은 어린 배추싹을 하염없이 다시 본다. 스러지는 것과 이제 시작하는 것과의 차이는 극명한게 나누어지는 것같지만 사실은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차 뿐이란걸 느낀다. 다 바람과 햇볕의 조화가 아닌가. 햇볕과 바람. 풍경!
배추를 걷어들이면 겨울이 오고 더이상 위선도 못부릴 나이가 되어질 것이다.
무얼 더 내려놓고 덜어내어야 하나----.그러나 배추는 그야말로 알이 꽉찬 김장배추로 만들어 내야겠지.
또 산그림자가 내리기 시작한다. 해가 짧아 졌다. 7시면 사위가 어둑어둑해진다. 내가 어느쯤의 시계바늘에 해당될까. 배추 심어두고 그냥 좋아라하면 될텐데 자꾸 산그늘 떨어짐과 뉘엿뉘엿 넘어가는 햇살에 비낀 배추싹에 번갈아 눈길을 준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또 무얼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