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그믐날, 그날은 잔뜩 묵직한 침침한 날씨에 자못 포근함이 어찌 눈이라도 한바탕 올것같은 그런 날이었다. 사위가 어둑어둑해지고 뒷뜰에 조그만 초롱불하나 지피자 목련나무 가지사이로 아주 작은 눈이 사르륵거르며 내리기 시작했다. 그 실눈이 따뜻해 보였다. 종일을 공방의 나무바닥깔기와 걸레질에 부산을 떨다가 저녁나절이나 되어서야 비로서 허리펴구 넓은 창가에 설 수 있었다. 언제 보아도 창가의 겨울 목련은 오늘같은 날엔 더 따사해 보인다. 아마도 가지끝에 포근해 보이는 해일 수 조차 없는 무수한 꽃눈을 품고있어 그럴것이다.
목련사이로 사락거리던 눈은 사위가 더 어둑해지자 점점 눈송이가 커지고 종내엔 함박눈이 되어 이젠 숨조차 죽이고 뒤뜰의 목련꽃눈을 싸안고 두충숲과 연못에 라일락 잔가지위에 잔잔히 펴져나간다.
그래, 서설이야! 이젠 입춘도 지났잖아! 지난 해 우리들 의 아쉬움이나 힘겨웠던 모든 것을 다 덮어버리는 서설이야!
정문기가 생각나고 최진사가 생각나고 동술이랑 천수와 서울의 뭇 동기녀석들이 떠오른다. 순진무구한 조현규랑 오목이의 웃음이 눈속에 범벅이 되고 김양경의 큰 엉덩이가 떠오른다. 그래 다들 좋은 일만 있을거야! 이눈은 분명 서설일텐데 말야!
섣달 그믐에 내리는 눈, 소리없이 내리는 함박눈, 서설!
동기들아! 모다 모다 건강하구 올해 자알살아 보자! 그믐에 서설이 내렸잖아!
DATE: 2005.02.11 -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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