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 베란다에서 알 품고 있는 게 처음에는 비둘기 인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천연기념물 황조롱이였다. 그렇게 된 건 바깥 허공쪽을 향한 채 얼굴 한번 보여주질 않은 황조롱이에게도 책임은 있다.
스치로박스에 뭣 좀 심어볼까 해서 흙을 퍼담아놨는데 먼저 차지하고 알을 낳은 것이다. 누런 알이 다섯개였다. 조롱이어미는 노인네 고쟁이 들춰 지전 세보듯 가끔씩 머리를 박고 알을 굴려주었다.
시골집마당 나무에도 매년 새들이 날아와 새끼를 치는데 이것들은 지덜이 알아서 깔끔허니 낳고 키우고 떠난다. 그러나 도시아파트에서 새가 집안에 드는 건 여간 성가신게 아니다. 지저분해 지는 건 둘째치고 우선 기본예의가 없어 문제다. 물론 교육을 못받아서 그럴테지만.
알 다섯이 모두 새끼로 부화되어 나왔는데 먹이는 주로 작은 들쥐였다. 어미가 고기를 잘게 찢어 새끼입에 넣어주었다. 그럴 때마다 서로 받아먹겠다고 입을 짝짝 벌리는 게 볼만했다. 어미는 부지런히 사냥을 해 왔고 어쩌다 숫놈도 몇번 잡아다 주는 듯하더니 그것도 귀찮아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숫놈은 아예 눈에 보이질 않았다.
새끼들 사이에 크기가 점점 차이가 났지만 어미는 다섯마리를 모두 키워낼 자신이 있었는지 한 마리도 버리질 않았다. 동네가 도시변두리라 사냥거리가 그래도 있는 모양이었다.
문제는 새끼들이 내지르는 그놈의 똥이었다. 완전히 물똥인데 똥쌀 때는 다른놈 얼굴에 내갈기는 법은 없었다. 지척거리며 쇠창살쪽으로 다가가 바깥을 향해 엉덩이를 내밀고 똥을 갈겼다. 날개 펼치고 엉덩이 내미는 것이 캉캉 춤추는 거와 똑같았다. 어디서 그걸 보았는지.
놈들이 내지른 똥은 아랫집베란다로 떨어져 얼마동안 이웃의 항의에 시달려야 했다. 우리집은 15층에 있으니 아랫집들이 모두 피해자였다. 내려다보면 아래층의 집집마다 베란다가 모두 황조롱이 똥으로 허연 얼룩이었다.
찾아 올라와 벨을 눌러 항의하는 집이 있는가 하면 에레베타에서 만날 때마다 어떻게 조치 좀 취하라고 항의하는 집도 있었다. 그중에 아래아래층에 사는 영감탱이가 심했다. 반상회때 젤루 말 많고 혼자 깰끔한 척 하는 늙은이였다. 천연기념물도 아닌 주제에.
박새나 딱새 새끼들이 용변하는 걸 보면 먹이 받아먹은 후 새끼는 막바로 돌아서서 어미 앞에 살짝 엉덩이를 치켜들어 둥그런 모양의 똥을 만들어 낸다. 그러면 어미새는 그게 풍선껌인줄 알고 받아 물고 씹으면서 먹이 잡으러 다시 나간다. 그런데 황조롱이 새끼는 그게 아니고 적당히 지덜이 알아서 용변을 봤다.
이웃들의 항의에 눈하나 깜짝하지 않으니 이웃들은 각자가 알아서 자구책을 강구했다. 천연기념물인데 낸들 어쩌겠는가. 자개상을 내어 걸쳐놓거나 텐트 풀라잉이나 박스를 펼쳐놓기도 했다. 마른 생선먹기를 포기한 집이 생겨났고, 베란다 농사를 그만둔 집도 생겼다. 그거야 각자 알아서 할 일이고.
솔직이 내 집에서 무슨 기계를 돌려 피해를 주었다면 떡이라도 해서 돌리겠다. 그게 아니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새끼들이 털갈이가 시작되자 이번에는 새끼들 몸에서 나온 깃털이 황사처럼 날려 위층 사람들까지 난리였다. 내몸에서 난 깃털이라면 내가 이사라도 가겠지만 그렇질 않으니 황조롱이가 거주이전을 하지 않는 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 역시 무시할 도리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새끼들은 무럭무럭 잘 자랐다. 먹이를 찢어주지 않아도 저들끼리 다툼질해 가며 잘도 찢어 먹었다. 내 눈에는 어미가 보이지 않는데도 새끼들은 어미가 어디선가 오는 걸 미리 알고 삐삐거리며 울어댔다.
어미새는 먹이사냥을 나갔다고 해서 언제나 먹이를 물고 오는 건 아니었다. 들쥐들이 주로 활동하는 아침저녁으로 사냥을 나가는데 늘 먹이를 물고 오질 못했다. 사냥을 못한 저녁이면 새끼들은 그냥 굶고 자는 거 같았다. 새끼들의 배고픈 내색은 사람이나 같았다. 시무룩한 표정들이었다.
새끼들에게 고깃덩이를 좀 넣어줄까 했는데 어미가 사양했다. 먹이감이 부족한 환경이라면 어미는 개체수를 알아서 조절할 것이다.
현충일 연휴동안 시골집엘 다녀오자 황조롱이들은 완전히 자라 있었다. 깃털도 더 이상 날리지 않았다. 어미는 먹이를 날라다 주질 않고 건너편 교회 꼭대기에서 새끼들의 날개짓을 유도했다. 어미를 닮아 새끼들도 교회는 잘 다닐 거 같았다.
학과시간이 따로 있는 건지 어미는 새끼들에게 비행술, 사냥법, 엄폐와 은폐, 공격과 방어, 응급처치, 적기식별법, 기상학, 독도법, 야간비행, 심지어 일주일 안먹고 살아버티기 또는 독수리먹이 훔쳐먹기 따위도 가르치는 듯 했다. 학과중 딴짓이라도 하는 놈이 생기면 어미는 다가가 사정없는 체벌을 가했다.
강남사는 전우분이 다 큰놈 한마리를 강남으로 양자보내라는 연락을 해 왔다. 사람이야 강남살기 좋고 학군 좋을지 몰라도 황조롱이에게는 강남살이가 어떨지 몰라 쉽게 응하기가 어려웠다. 내 자식이 아니라 내 맘대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황조롱이들은 삼일을 두고 한마리씩 모두 둥지를 떠났다. 알에서 깨어 생장기간이 얼추 석달은 된 거 같다. 박새나 딱새가 보름 정도인 것에 비하면 몇배의 기간이다. 아무 인삿말도 없이 떠났지만 섭섭하진 않았다.
모처럼 베란다를 열고 물을 뿌려 쓸고 닦는데 구석에 작은 메모지가 하나 붙어 있었다. 황조롱이 어미가 남긴 메모였다.
'BE NOT INHOSPITABLE TO STRANGERS LEST THEY BE ANGELS IN DISGUISE.'
<이방인을 냉대하지 마라. 그들은 위장한 천사일 수도 있으니.>
새겨들을 문구였다.
(글쓴이: 조 철/www.vietvet.co.kr)
|
이름검색
473
22
32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리...
베트남의 명물 "시클로"
